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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는 반드시 갚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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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권 / 전 남양주오남중학교장
기사입력 2021-03-06 [10:06]

[김기권 칼럼]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금산 촌놈, 나는 서울로 유학을 왔다. 여름방학을 맞아 멋을 잔뜩 내느라 모처럼 기숙사 동급생 시계를 빌려 찼다. 

 

그런데 대전가는 완행열차를 타고 막 출발하려는데 번개같이 내 손목시계를 가로채 기차 앞 출입계단을 뛰어내리는 바람에 그야말로 멍하니 그놈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방학 내내 그 시계 사건으로 그 황금 같은 시간을 고민으로 보냈다. 지금이야 그런 시계는 큰돈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상당한 값이 나갔기 때문이다.

아마 그 친구는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간혹 시계 사건을 기억할까? 나는 그날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놈 잘사나 보자 저주의 날카로운 나의 심보가 희미하게나마 지금도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그만큼 남의 가슴에 눈물을 내면 시공을 떠나 존재하니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은혜를 입을 당시는 기억하나 세월이 흐르면 망각 속에 잠들어 버리고, 피해를 입거나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한 것은 절대 잊지 못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러하기에 은혜는 적으나 많으나 꼭 어떤 방법이든 보상해야 하며 나로 인한 타인에 대한 손해는 역시 반드시 보상해야 한다. 

 

우리는 보상하면 금전만을 생각하나 꼭 그렇지는 않다. 그분에 대한 편의성과 말로도 얼마든지 보상할 수 있다. 천 냥 빚도 말 한마디로 보상한다는 속담이다. 어쨌든 상대방 마음에 흡족함을 전달해야 한다.   

  

옛날 어느 스님이 시골길을 가다가 탐스럽게 잘 익은 서숙 이삭을 만지다 서숙 알 세 개가 손에 들어와 아까운 생각으로 입에 넣고 먹어 버렸다. 

 

그게 죄가 되어 소(牛)로 태어나 삼 년 동안 그집 일을 하다가 도끼세례로 이 세상을 떠났다. 그만큼 인과응보는 무섭다. 

  

우리는 금전적으로 타인의 신세를 지기도 하지만 언어로도 큰 상처를 주기도 하며 그게 화근이 되어 생명까지 담보되는 무서운 결과와 사례가 밤하늘 별처럼 많다. 

 

조그마한 은혜도 잊지 않고 보답한 사례도 또 그렇게 많다. 원주에 가면 치악산이 있고 그 산속에 상원사가 있다.

 

치악산(雉岳山) 전설 유래

 

원래 치악산 이름은 적악산(赤岳山)이었다. 옛날 경상도 어느 선비가 과거 보러 서울로 가는 길에 적악산을 넘게 되었다. 산 중길을 가는데 가까운 곳에서 큰 구렁이가 꿩을 잡아 막 먹으려 하고 주위에 몇몇 꿩들이 자지러지게 울부짖고 있었다. 선비는 지체 없이 달려가 활로 구렁이를 쏘아 죽이니 꿩은 살아나서 날아가 버렸다.

 

날이 저물어 주막집에 숙식하게 되는데 자정이 좀 지나서 하도 몸이 답답해 깨어보니 큰 구렁이가 선비 몸을 칭칭 감고 혀를 휘두르며 곧 삼킬 것 같은 기세로였다. 

 

나는 네가 죽인 구렁이의 아내인데 이제 너를 죽여 원수를 갑겠다고 하자 다급한 선비는 그건 당신 남편이 죄 없는 꿩을 죽이려 하여 의협심에서 그러한 것이니 용서해 주시오.

▲ 김기권 전 남양주 오남중학교 교장

이에 아내 구렁이는 좋소, 그러면 상원사 종소리 세 번을 울리게 해보세요. 그러면 나는 종소리 은혜를 받아 승천할 것이요.

 

이에 선비는 아니 몸이 이렇게 당신 몸으로 칭칭 감겼는데 어찌 상원사까지 가서 종을 치겠소. 이렇게 선비와 구렁이 아내가 옥신각신 하는데 종소리가 뎅, 뎅, 뎅 세 번 울렸다. 

 

깜짝 놀란 구렁이는 스르르 몸을 풀고 하늘로 올라가고 선비는 날이 밝아 종소리 난 곳을 물어물어 찾아가니 상원사 절이 있고 종각 종 밑에는 꿩들이 머리가 깨진 채 죽어 있었다. 그 뒤에 적악산은 꿩(稚)악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급격한 침입으로 대처하지 못한 왕과 신하들은 황망히 의주까지 피난하게 되고 명나라에 구원군을 요청하게 된다. 

 

그러나 명나라는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 차일피일 구원병 파견을 망설이고 있을 때 번역관 홍순언이 젊은 시절 북경에 공무 차 갔을 때 우연히 홍등가에서 호부시랑 류모의 딸을 거금을 내고 홍등가에서 구출하고 그녀가 후일 예부시랑 석성의 부인이 된다. 

 

석성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명군이 파견되고 명군에 의해 조선군은 사기충천 임진왜란을 마감하게 된다. 물론 원군으로 온 명군의 횡포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여하튼 그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매일 매일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끊임없는 은혜와 원한 관계를 맺고 산다. 한 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은혜는 보은하고 원수는 반드시 바로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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