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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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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기사입력 2020-08-06 [22:20]

[최창일 칼럼] 시골 목사님의  ‘장마독재’라는 칼럼 제목이 눈길을 끈다. 계속된 장마는 ‘일당독재’, 아니 ‘일방독재’라고 정리한다. 긴 장마에 도라지꽃도 구경 못하고 진한 백합화 향내도 맡지 못한다고 장마독재를 원망한다.

 

시인 목사님의 칼럼을 확대하면 세계는 코로나19와 장마 독재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금년은 사람이 아닌 두 종류의 자연변화에 대한 독재를 맞고 있다.

 

1859년에 존 스튜어트 밀(1806~1873, John stuart Mill 영국)은 <자유론>에서 “개별성을 파괴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어떤 이름으로 불릴지라도 독재다”라 했다.

 

지구상에 가장 혹독한 독재를 행한 나치는 “하나의 국민, 하나의 제국, 하나의 총통”이라는 표어를 사용했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홀(獨)로 재단(裁)한다는 뜻으로 가위질 한다는 뜻이다.

 

독재의 뜻은 1인이나 소수에게 권력이 독점되어 있는 정치적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철학에서 독재는 조금은 낭만적이다. 권력자의 수에 상관없이 ‘근본적인 연구없이 주관적인 편견으로 판단을 내림’이라고 뜻풀이 한다. 

 

영어로는 Dictatorship 이라 하는데 이는 고대 로마의 비상체제 때 세우는 관직인 독재관(딕타토르)에서 온 말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비상사태가 발생 시 원로원의 토의 없이 독재관 1인이 단독으로 모든 권력을 행사하는 제도가 있었다. 

 

독재관 임기는 불과 6개월뿐이었다는 것을 보면 독재가 아닌 결정의 비민주적인 방법이라 보인다. 로마 제국 역사상 독재관 권력을 무한정 누리려고 한 사람은 율리우스카이사르(BC100~BC44, Gaius Julius Caesar) 뿐이다.

 

대한민국은 독재라는 단어에는 매우 민감한 시국을 맞고 있다. 여기에서 한국의 독재에 관한 역사는 거론하지 않는 것이 편할지 모른다.

 

개개인의 해석이 다르고 독재라는 인식이 너무 가파르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이른바 촛불시위, 태극기시위대의 독재에 관한 해석은 크게 다르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는 헌법에 기초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입헌정치가 원칙이나 이런 체제를 무시하고 1인이나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고 맘대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시골목사님은 장마독재에 항거하는 방법보다는 대처법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장마 때는 빨래 건조기가 필요하다. 옷에서 눅눅한 냄새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습기와 곰팡이가 생길까봐 옷장을 열어두고 외출을 한다. 

▲ 최창일 / 시인.     ©성남일보

산골에 살면서 빨래 줄에 이불을 널어두고 외출을 했다. 소나기장대비에 다 마른 이불 빨래가 흠씬 젖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비구름아 물러가라 데모를 해봐도 소용이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날씨 독재에 항거는 기다리는 방법이 전부라고 하는 글이다.

 

솔직히 날씨 하나에 쩔쩔 매는 인간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남용하는 독재는 그야말로 작위적인 판단이 아닌가 싶다.

 

현실에서 독재에 대한 논리는 권력자들이 국민을 이용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국민을 볼모로 기만하고 있다. 어느 면에서 권력자들이 장마독재를 행하는지도 모른다.

 

평범한 국민은 아이들과 소박하게 삼겹살을 구워가며 이야기 나누고 살아가고 싶다. 무지개 뜨는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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