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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순응으로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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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기사입력 2019-12-22 [12:50]

[최창일 칼럼] 제주도 공항에 내리면 문주란(文珠蘭)이 먼저 인사 한다. 화산석의 섬, 제주도에는 문주란과 풍란(風蘭)이 지척에 널려 있다. 문주란과 풍란은 제주도 시민이 심은 꽃들이 아니다. 알다시피 제주도는 섬이다. 사시사철 바람이 불어온다. 낮선 곳에서 파도에 밀려오거나 바람에 날려 온 씨앗들이 제주에 정착 한다. 

▲ 최창일 시인.   ©성남일보

귀화식물들이 토종 식물처럼 행세하는 곳이 제주도다. 제주도의 풍란은 일본과 동남아로 수출 길도 열렸다. 제주도의 풍란은 보호 란의 대접도 받아 왔다. 최근에는 재배 기술이 발달, 시중 꽃 가게에서 보기 쉬운 꽃이 되었다.

 

몇 년 전 제주도에 난민(難民)이 왔다. 난민 문제를 놓고 제주도민은 달갑지 않다. 제주도 사람도 살기 버거운 판에 난민 정착을 쉽게 동의하지 못했다. 난민을 옹호하는 시민단체도 있다. 그들을 내 몬다는 것은 사지로 보내는 것이라 옹호한다. 듣고 보면 제주 도민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시민단체의 의견도 틀리지 않다.

 

시민단체는 하나의 식물도 바람에 밀려와 가족이 되듯 난민에게도 인류애를 보이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말은 천륜과 같은 해석이다.

 

우리는 이런 문제를 놓고 양비(兩非)론이라고 한다. 양비론은 자칫 비겁한 사람으로 취급 받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흑과 백, 분명한 처신이 옳은 사람, 바른 사람으로도 분류된다. 

양비론이 옳다거나, 흑과 백, 분명한 사람이 옳다는 것은 법에는 없다.

 

또 다른 문화적 특성의 결과도 있다. 영국국민은 까치 조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두 가지 색을 가진 까치를 변절 조류로 생각한다. 영국인은 아침에 까치를 보면 기분 나빠 한다. 반면에 한국에서 까치는 길조로 분류한다. 이렇듯 문화란 그 민족이 갖는 특성이다.  영국 국민의 문화를 몰랐던 국민은행은 영국에 진출하면서 호된 홍역을 겪었다. 간판에 까치를 넣었다가 지워야만 했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은 심한 이념(理念)의 갈등을 보인다. 유식한 말로 보수와 진보라고 말한다. 칼럼을 쓰기도 두렵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같은 비중으로 지적을 하여도 욕 듣는 것은 현실이다. 

 

태극기는 자유한국당만 쳐다보고 촛불은 민주당만 쳐다본다. 균형의 시각으로 보지 않는다. 마치 못된 강아지 이웃 대하듯 한다. 두 부류의 사람들은 언어의 폭력을 일상처럼 한다. 물론 댓글이라는 현대적인 싸움도 한다. 댓글을 보면 댓글로 자살한 최진실이나 여타 연예인이 한없이 측은하다. 한국의 미래가 걱정이 된다. 이 같은 현상은 언론이 만든 과오도 크다는 분석도 있다.

 

정세균 총리론도 그렇다. 국회의장을 지낸 분이 총리가 되는 것은 부패한 정권의 태도라고 한다. 

 

영국에서 수상을 지낸 흄(home1903~1995)이 있다. 그는 내가 비록 총리를 지냈으나 정부의 부름이 있으면 외무부 장관직을 수락 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가 과연 장관을 수락하고 수행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고향, 봉하 마을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러면서 지방의회 의원으로 봉사하는 기회가 오면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물론 실행에 옳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민주주의는 토론과 협의를 중요시한다. 이것은 헌법의 나라라는 독일과 영국이 토론을 중시하는 시민사회를 만들고 있다. 토론으로 결정된 사항은 시민모두가 존중하고 앞서 지킨다.

 

유류(油類)로 만 갔던 세상이 전기와 수소로 가듯, 세상은 변한다. 문주란이 제주도에 왔던 것은 천고순응(天高順應하늘의 뜻에 따름)이다. 

 

난민이 제주에 오는 것은 우리 민족이 나라를 잃고 만주에서 독립운동 하였던 역사를 생각하면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제주도민은 문주란에게 왔던 곳으로 가라고 하지 않는다. 

 

어제는 오늘을 행복으로 만드는 기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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